미적인 것은 선의 상징이며 그리고 또한 (누구에게나 자연스럽고, 또 누구나 다른 사람에게 의무로서 요구하는 관계의) 이러한 관점에서만 미적인 것은 다른 모든 사람들의 동의를 요구함과 함께 적의한 것이다.
이때 우리의 마음은 동시에 감관인상들에 의한 쾌의 한갓된 수용을 넘어선 어떤 순화와 고양을 의식하며, 다른 사람의 가치도 그들의 판단력의 비슷한 준칙에 따라서 평가하는 것이다.
취미의 능력에 있어서 판단력은 경험적 판정에서와는 같지 않게 자신의 경험법칙들의 타율성에 종속되어 있다고 보지 않는다.
1.미적인 것은 직접적으로 적의하다. (그러나 단지 반성적 직관에서 그러하며, 윤리성처럼 개념에서 그러한 것이 아니다.)
2.미적인 것은 일체의 이해관심 없이 적의하다. (윤리적으로 선한 것은 필연적으로 어떤 관심과 결합되어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흡족에 관한 판단에 선행하는 그러한 관심이 아니라, 그러한 판단을 통해 비로소 일으켜지는 관심이다.)
3.상상력의 자유는 미적인 것의 판정에서 지성의 합법칙성과 일치하는 것으로 표상된다. (도덕 판단에서 의지의 자유는 보편적 이성법칙들에 따르는 의지의 자기 자신과의 합일로 생각된다.)
4.미적인 것의 판정의 주관적 원리는 보편적인 것으로, 다시 말해 누구에게나 타당한 것으로 표상되지만, 어떠한 보편적 개념에 의해서도 인지되지 않는 것으로 표상된다.
(도덕성의 객관적 원리도 보편적인 것으로, 다시 말해 모든 주관들에 대해서, 동시에 또한 같은 주관의 모든 행위들에 대해서 보편적인 것으로 설명되며, 그때에 어떤 보편적인 것을 통해 인지되는 것으로 설명된다.)
그래서 도덕 판단은 일정한 구성적 원리의 능력이 있을 뿐만 아니라, 오로지 준칙들의 기초를 그러한 구성적 원리들과 그것들의 보편성에 둠으로써만 가능한 것이다.
이러한 유비에 대한 고려는 보통의 지성[상식]에서도 통상적인 일이고, 우리는 자주 자연이나 예술의 아름다운 대상들을 윤리적 판정을 기초에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이름들로 부른다.
우리는 건물이나 나무들을 장엄하다, 화려하다고 부르는가 하면, 들판을 미소 짓고 있다, 유쾌하다고 부르기도 한다. 색깔들조차도 무구하다, 겸손하다, 귀엽다라고 부르는데, 이것은 색깔들이 도덕 판단들에 의해 일으켜진 마음 상태의 의식과 유비적인 것을 함유하고 있는 감각들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취미는 자유롭게 유희하는 상상력도 지성에 대해서 합목적적으로 규정될 수 있는 것으로 표상하고, 심지어는 감관의 자극 없이도 감관들의 대상들에서 자유로운 흡족을 발견하는 일을 가르쳐줌으로써, 이를테면 감관의 자극으로부터 습관적인 도덕적 관심으로의 이행을 너무 억지스러운 비약 없이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필기) 상징이라는 것은 멀리 떨어져 있는 두 존재 사이의 다리 역할을 해주는 것으로서 미가 선의 상징이라는 것은 미가 볼 수 없는 선을 감각적 이음새를 통해 보여준다는 것을 말하며 만날 수 없고 잡을 수 없는 선의 세계를 미를 통해서 상상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
칸트는 미가 선을 향해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데 이것은 미 자체가 선 안에 포섭되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미의 본래적 목적이 선의 추구 혹은 교화에 있다고 하는 것이며 취미판단을 통해 이러한 이행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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