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문헌
<아도르노의 경험의 반란>, 이병탁
④재조명
1. 아도르노의 철학이 주체 중심적이라는 비판에 대해 아도르노 입장에서 변호해 보자면, 개념이 객체로부터 발생된다는 것의 의미는 개념과 객체는 ‘차이점과 동시에 공통점도 가지는’, 유사성의 관계에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개념은 주체 안에서 그 자체로 순수하지 않으며, 개념의 변화와 소실은 객체의 변화와 소실과 같이 변화한다고 말할 수 있다.
결국 개념은 주체 속에서도 확실히 그 한계를 가지며, 그 이유는 개념이 객체의 공통점을 추상화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아도르노는 주체의 합리적 사고를 어느 정도 제한하면서, 인식에 있어서 객체의 우선성을 인정한다. 결론적으로 객체의 경험 구성적 역할을 인정하는 철학에 대해서 주체 중심적이라고 비판할 수는 없는 것이다.
2. 미적 경험은 개념을 사용하는 사유와 같이 동일성 원리가 내재하는 방법으로 객체에 접근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미적 경험 또한 개념적 사유처럼 주체가 객체에 대해 규정한다고 말하는 것은 잘못된 주장이다.
덧붙여 동일성 원리의 상향으로는 대상의 공통점을 추상화 시키는 개념의 본질 때문에(즉, 동일성 원리가 내재하는 방법이기 때문에) 완전한 객체를 환원할 수 없다.
3. “규정하고자 하는 사태 주위에 개념들을 집중시켜 함께-배열함으로써 동일성 개념이 잘라버린 개념의 잉여를 표현하는 것” 은 애매하지 않다. 아도르노가 주장한 재-배열하기는 주체의 사유의 한계를 보여주는 것이다.
결코 객체에 대해 정의하고, 객체 자체를 드러내고자 하는 것이 아니며 단지 개념의 잉여를 표현함으로서 개념을 사용하는 우리의 사유에 동일성 원리가 내재해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주체의 합리적 사고능력이 완전하지 않음을 알리는 것이다.
또한 재-배열하기로 어떤 예술작품을 든다는 것은 잘못된 주장이다.
예술작품은 개념이 아니다. 개념에서는 동일성원리가 내재하기 때문에, 개념을 사용하는 사유는 객체를 완전히 드러낼 수 없다. 아도르노가 제시하는 미적 경험은 동일성 원리가 작동하는 합리적 인식이 아니라 동일성원리가 작동하지 않는 방법을 통해 이루어진다. 미적 경험은 개념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이해되는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미적 경험을 통해 객체와 마주할 수 있다.
4. 환원되지 않는 객체의 존재가 미적경험을 통해서만 알 수 있다는 점에서, 이를 겪어보지 못한 사람에게는 충분히 이러한 주장이 모호하다고 할 수 있다. 합리적 인식에 가려진, 완전한 객체에 압도됨을 겪어 본 사람만이 이에 대해서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미적 경험은 동일성 원리에 근거하기에 시대마다,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하지만 미적 경험이 전율로서 나타날 때 이전까지 동일성원리에 억압되었던 환원되지 않은 객체로부터 나타나는 것이다. 경험을 느끼는 것이 ‘주체’라고 해서 경험의 대상이 ‘객체’가 아닌 것이 아니다.
아도르노는 물화로부터 경험을 구제하고자 했기 때문에 억압된 객체를 드러나게 해주는 미적 전율을 주장했다. 이외의 전율은 아도르노의 입장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지지 않는다. 동일성 원리에 의해 억압된 객체가 드러나는 것은 미적 전율을 통해서 만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아마 아도르노 또한 합리적 인식을 통해서도 느낄 수 있는 나름의 전율이 있음을 반박하지 않을 것이다.
※생각해볼 문제※
⓵개념 제작에 있어서 주체와 객체의 관계가 상호적인가 일방적인가
⓶환원 불가능한 비동일자는 있는가, 없는가
③대상과 하나 되는 전율로서의 미적 경험이 객관적인 것인가 주관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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