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ontent="user-scalable=no, initial-scale=1.0, maximum-scale=1.0, minimum-scale=1.0, width=device-width"> 푸코(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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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코(3)

by MarvelKim 2019. 4. 6.

 이성은 이성 자체로 몰락되는 것인가 그럴수 없다면 그것은 이성이라는 이름 하에 분출된 반이성의 반란인가

 

 

How to read 푸코, 웅진지식하우스. 2008

 

 

 

2.광기의 역사와 이성의 몰락

 

 

그의 사상에는 정신병과 육체병의 역사, 감옥의 역사, 과학사, 성욕의 역사 등이 진술의 언어구조적 방법을 통하여 해석되고 있다. 그는 궁극적으로 인간의 주체라는 것이 참다운 지식의 체계에 얼마나 거추장스러운 것인가를 지적한다. 그는 역사에서 초월적인 나르시시즘에 빠져 있는 주체나 주체의식으로부터 역사를 해방시키려 한다.(니체주체의 해체’)

 

푸코에 있어서 광기는 라캉의 경우처럼 정신적 질환을 말하는 정신분석적 개념이 아니다. 그러므로 광기의 역사는 정신질환의 역사가 아니다. 왜냐하면 광기는 어느 시대 어느 사회나 있었고, 따라서 광기를 어떻게 인식하였는가를 분석하는 작업은 그 시대의 특징적 지층을 정리하는 과제이기도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누구나 자기 자신 내부의 광기의 요소를 다 지니고 있다. 광기는 문화와 인간의 사실적이고 보편적인 요소이다. 푸코는 프로이트나 라깡과 같은 정신분석학자가 시도하는 정신분석 치료법을 강압적이고 순응주의적 현대문화의 상징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한다.

 

푸코에 의한 광기의 시대별 특징

 

(1)중세기

 

서양에서 나병이 거의 자취를 감추었다. 그래서 나병환자들을 별도로 수용했던 교외의 수용소에 다른 사람들이 들어서게 된다. 이들은 바로 미친 자들이었다. 언제나 지리적 격리현상은 대조적으로 문화적·사회적 통합을 동반한다. 중세기 말에 광기가 유럽문화와 지평에 하나의 갑작스런 불안으로 떠오르게 된다. 종교적인 영향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중세기 말 사람들은 광인의 영혼은 짐승의 포로가 된 상태라고 생각하였고, 정신에 대한 유혹적인 타락의 결과라고 여겼다. 이모든 광기가 인간의 지나친 욕망에서 온다고 그들은 생각하였다. 광인은 지옥에서나 볼 수 있는 人獸(인수) 양면의 모습을 한 괴물이다. 기독교적 세계관에 젖은 중세인들에게 광인이 아는 지식은 금지된 지식이며 악마의 지배이며 세상의 종말이다. 중세인들에게 광기와 광인은 두려움과 악마적 호기심의 상징성을 아울러 지니고 있다.(도시외곽에 광인들을 유폐)

 

(2)르네상스기

 

중세기에 도시외곽에 광인들을 유폐시킨 것과 르네상스기에 광인들의 배를 태워 바다로 강으로 멀리 띄워 보낸 행위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중세기에서는 격리와 사회통합을 수행하였는데 반해서, 르네상스기에는 한편의 격리와 다른 한편의 사회 문화통합은 우리 의식의 성으로부터 가능하였다. 즉 불가시적인 마음의 장벽이 더 짙게 생겼다. 그러나 이 시기에 광인들이 배를 타고 강제로 멀리 기약 없는 물의 여행을 하였지만, 그래도 광인들은 배 안에서 자유로웠고, 불안과 희망이 한없이 교차된 여행의 포로였다. 광인들을 배와 물을 통해 멀리 떠나보냈지만, 광인과 보통 사람 사이에 관계가 완전히 차단 된 것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 시기의 많은 연극이나 익살극에서 광인이나 바보가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극 중에서 진실을 소지하고 있는 자로 나타났다. 광인은 바보스런 언어와 동작 속에서 연주의 실마리를 푸는 진실의 말을 가진 자로 여겨졌다. 그 뿐만 아니라, 사람들은 광인의 배를 이성을 찾아가는 순례자의 배로서 상징화하기도 하였다. (광인들을 배를 태워 멀리 띄워 보냄)

 

15세기 후반에 와서 광기는 죽음으로 상징화된다. 광기는 이미 인간에게 죽음 그 자체로 여겨지기 시작한다. 광기나 죽음 모두 인간의 불안한 가능성 안에서의 뒤틀림이다. 그래서 자기 애착은 광기의 첫 신호다. 그래서 인간이 오류를 진리로, 거짓말을 현실로, 폭력과 추함을 정의로 수용하는 것은 자기 자신과의 애착에서 온다.

 

(3)17-18세기의 고전시대

 

르네상스기의 배는 사람들과 사물들 중간에 동아줄에 묶이었고, 붙잡혔고, 고착되었다. 이제 배가 아니고 병원이다. 광인의 배가 광인의 병원으로 변한다. 이와 함께 광인은 정신적 나병환자 취급을 받는다. 배가 병원으로 탈바꿈하면서 광인들은 이제 더 이상 사회로부터 추방당하지 않고, 오히려 사회에 의하여 일정한 장소에서 거주 제한을 당하게 된다. 광인들은 무질서의 표본이기는 하지만, 그 무질서가 신체적 결함이나 기능상의 하자 문제에서 온다기보다, 오히려 생각의 불규칙성과 정도의 지나침에서 온다고 여겼다. 그런데 17세기부터 광인들은 이제 사회로부터 낭인, 주정뱅이, 게으름뱅이, 범법자들과 같은 유형으로 취급을 받게 된다. 르네상스기까지 광인들은 기인이었지만 병자는 아니었다. 그러나 고전시대부터 광인은 병자로 취급되며 정신이 고장난 존재로 여김을 당하게 된다. 17세기에 대두되기 시작한 합리주의는 이성을 건강, 몰이성을 병으로 진단한다.(이성과 반대된 몰이성을 병으로 진단하고 광인을 병원에 구속시킴)

 

17세기 세워진 병원은 광인을 의학적으로 치유하기 위한 목적이라기보다 오히려 비생산적인 자들을 격리 수용시켜 생산성이 있도록 교정하기 위한 제도이다.

 

(4)18세기 후반

 

이 시기에 광인에 대한 정신병 치료가 본격적으로 진행되었다. 19세기에 접어들면서 산업이 급속도록 발달하여 인력이 필요하고 노동력의 수요가 급증하기 때문에 낭인, 극빈자들을 놀고먹게 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와 반면에 광인들은 이제 신체적으로 묶이지는 않았지만 정신적으로 새로운 사슬에 올가미를 쓰게 되었다고 푸코는 생각한다. 이제 광인들은 일반병원의 감금제도가 아니고 정신병원에 위탁된다. 일체의 몰이성과 반사회적 광기를 억압하는 것이 행복한 사회로 가는 지름길이라는 신화가 이시기의 서양사회에 만연되어 있었다. 광기는 육체적 악 자체였다. 그래서 이런 발상과 함께 일반병원은 서서히 정신병원으로 변화해 간다.(일반병원에서 정신병원으로의 과도기적 시대)

 

(5)19-20세기

 

정신병원은 일반병원처럼 신체적 구속은 없어졌지만, 더 교묘한 정신적 속박을 자행하였다. 즉 광인에 대하여 정신적 책임을 지는 심리적 고문이 시작된다. 광인은 애초에 이성을 가졌던 인간존재인 한에서 이미 광인이 된 것에 죄가 없다. 그러나 광인인 한에서 광인은 그가 죄의식 없는 그 병의 내부에서 사회와 도덕을 어지럽힐 수 있는 모든 것에 대하여 스스로 책임을 느껴야 하고 그가 받는 벌에 대하여 스스로에게만 탓을 돌려야 한다.(광인 스스로 탓하게 하는 정신병원의 시대)

 

18세기 말까지의 일반병원의 감금제도와 19세기부터 시작된 정신병원제도는 감시하는 자에게 도덕적, 정신적 절대권위를 부여했다. 정신병제도는 부르주아 사회의 정신질서를 반영한다. 이 정신질서는 이성과 몰이성을 갈라놓고, 낮의 계산된 법칙만 존중하고, 밤의 광기어린 열정을 무분별한 짓으로 매도하는 윤리를 말한다. 프로이트나 라캉의 정신분석은 결국 광기를 어린 아이의 짓으로 무시하고, 아버지의 권위를 되살리는 부르주아 사회의 이데올로기라는 것이다.(마루쿠제의 잉여가치설프로이트의 정신분석)

 

<광기의 역사>에서 푸코가 종국적으로 돌아가는 곳은 니체가 있는 곳이다. 푸코는 17세기부터 시작된 서양사에서 광인에 대한 비인도적이고 때로는 잔혹한 사회구조와 그런 사고방식을 잉태한 부르주아 사회의 냉엄함을 비판한다.

 

그렇다면 푸코가 찾는 이상사회는 어떤 것인가? 그것은 니체적 광기의 인간이 살 수 있는 세계인가? 중세기나 르네상스도 광인들의 천국은 아니었다. 푸코가 귀하게 여기는 그 세계는 현실 역사의 것이 아니고, 신화의 세계이다. 그는 <역사철학 비판>에서 현대 서구 자본주의와 부르주아 사회를 비판하면서 로고스(이성)와 히브리스(몰이성)가 갈등을 일으키지 않는 문명과 사회를 갈구하는 근원회귀 사상을 내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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