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코(1)
푸코가 말하는 광인은 이 시대의 누구를 가리킬까?
『How to read 푸코』, 웅진지식하우스. 2008
“지성에 관해서 말할 때, 있는 것을 있지 않은 것으로 보이게 하거나, 아니면 있는 것 그 자체가 다른 것으로 보이게 하는 것을 기술하는 것은 어떤 식으로는 유익할 수도 있다고 말할 수 있겠다. 이 말은 현실적인 것을 이런 식으로 지정하거나 기술하는 것으로는 ‘이것이 있기 때문에 저것이 있게 될 것이라는’ 식의 처방적 가치마저도 잃게 된느 이유를 보여준다. 또한 이 말은 왜 역사에 의지하는 것이 의미가 있는가 하는 질문에 대해, 지금 있는 것이 지금까지 있어온 것과는 다를 수 있다는 방식을 역사가 보여주는 데 기여하는 정도가, 즉 우리에게 가장 뚜렷이 보이는 사물들은 위태롭고 부서지기 쉬운 역사가 보여주는 정도가 그 해답을 제시하게 된다. 이성이 필수적인 것으로 여긴 것이, 아니면 다른 이성의 형식이 필수적 존재로 여겼기 때문에, 주어진 것이 역사화하는 것으로 완벽하게 잘 보일 수 있다. 이것을 등장시키는 우연의 연계망을 추적하는 것은 가능한 일이다. 그렇다고 하여 합리성의 이러한 형태가 비합리적이라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합리성의 형식들이 인간 실천과 인간 역사에 기초하고 있다는 의미로 말하는 것일 뿐이다. 그리고 이러한 사물들은 만들어져 온 것들이기 때문에, 어떻게 그것들이 만들어 졌는지를 우리가 알고 있는 한, 그것들은 애초부터 만들어지지 않았을 수도 있었던 것이다.”
이 인용문은 라우레(Gerald Raulet, 1949~)가 주관했고 1983년에 출간된 대담에서 발췌한 것이다. 라우레는 푸코 스스로 여러 차례 제기했던 문제에 관하여 푸코에게 질의했다. 푸코에게, 그 문제는 철학의 핵심을 관통하는 문제였다. 무엇이 현재의 본질인가?
이 질의에 대답하면서, 철학을 자유로운 공간을 활짝 여는 것으로 이해한다는 푸코의 입장이 밝혀졌다. 지성인의 역할은 새로이 생각하는 방법들을 내보이는 것이다. 사람들이 자신의 주변 세계를 다른 빛을 통해서 볼 수 있게 하고, 사람들이 지닌 정신적 습관을 뒤흔들고 또 사람들로 하여금 변화를 요구하고 선동하게 부추기는 방법들을 제시하는 것이다. 지성인은 사회의 도덕적 양심이 아니며, 지성인의 역할에는 정치적 판단을 내리는 일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 오히려 대안적인 사고방식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사람들을 해방시키는 것이 바로 지성인의 역할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자신의 연구를 다른 역사 연구들과 구분하기 위하여 고고학과 계보학이라고 불렀고, 자신의 연구가 역사가의 연구가 아닌 철학적 실천이었음을 강조했다. 그가 추구했던 목표는 “역사 그 자체를 생각하려는 노력을 통하여 사고력이 침묵을 지키며, 판단한 착상으로부터 생각이 해방되는 정도와 이것이 다른 방식으로 생각할 수 있을 가능성의 정도를 배우는 것이다.”
역사화는 그 자체가 목적이 될 수 없으며 역사화된 것과 무관해질 수도 없다. 푸코가 역사화한 것은 언제나 시간을 초월하는, 불가피한 것으로 보이는 사실들이었다.
역사 연구의 목적은 과거에 관한 우리의 지식을 증가시키는 것이 아니다.
역사 연구의 요체는 우리가 다르게 생각하고 다르게 살 수 있다는 것을 우리 자신이 이해하는 데 있다. 그의 역사는 과거에 관한 역사가 아니고 우리와 오늘에 관한 역사이며, 현재의 우리가 있게 된 방식뿐만 아니라 지금의 우리가 앞으로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될 수도 있다는 방식마저 보여주려는 시도로서 표현되고 있다.
푸코는 많은 경우들에서 사회적 실천들이 수행했던 본질적이며 구성적인 역할을 명시적으로 확인했고, 이런 경우들을 한결 같이 연구 대상들로 추려냈다. 1960년대 고고학 시기에 푸코는 주로 과학의 담론적 실천들과 그에 내재한 규칙성들을 연구의 중심에 두었다. 그는 과학적 실천들에 있는 규칙들과 제한들을 확인함으로써 생물학 및 언어학과 같은 지식 영역과 이들의 연구 대상인 생명 및 언어가 어떻게 사유의 역사에 등장하는가를 보여주려고 노력하였다. 1970년대 계보학 시기는 힘의 실천들과 이들을 지원하는 지식의 형태들을 연구하였다. 예컨대 어떻게 범죄심리학의 발달이 범법자를 지배하는 의사의 힘을 가능하게 하였는가를 연구했다. 마지막 시기에는, 윤리적 실천들과 자아의 기술들로 명명한 훈련을 통해 어떻게 사람들이 스스로의 모습을 모양 짓는가를 연구했다.
푸코가 행한 분석의 근본적인 대상들은 사회적 실천들이긴 하나 그는 자동차들이 공장에서 생산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모든 것이 사회적으로 구성된다고는 주장하지 않았다. 어떤 과학적 실천들과 이들을 가능하게 한 역사적 발전이 있기 전에는 동성애가 존재하지 않았다고 하는 것은 우리가 지금 연상하는 어떤 행동들과 느낌들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각기 다른 역사적 실천 속에서 각기 다른 방식으로 사회적 실천들이 과학 분석의 대상으로 형성되었음을, 즉 객관화되었음을 의미할 뿐이다. 어떤 시기에는 특정한 행동들과 느낌들이 정신질환으로 객관화되었으며, 또 다른 어떤 시기에는 예컨대 도덕적인 죄로 여겨졌다. 과학적 실천들과 그것들을 규율하는 규칙들은 특정한 시기와 특정한 조건을 충족시키는 경우에 한정하여 어떤 실체들이 과학적 연구의 대상들로 등장할 수 있게 만든다.
그런데 특정한 행동들과 느낌들이 객관화되는 방식은 그것들의 주체들에게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하며 그 결과, 주체들의 행동들과 감각들에도 큰 영향력을 미치게 된다. 예컨대 어떤 사람이 동성인 다른 사람에게 성적 욕구를 느끼기 때문에 정신적으로 병든 사람으로 분류된다면, 이러한 분류는 불가피하게도 그들이 행동하고 스스로에 대해 생각하는 방식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자신의 욕구를 병리적인 것으로 분류한 과학적 전문가의 말을 듣는 것은 그런 욕구를 바꾸려는 노력을 유인하는 강력한 자극이 된다.
생물학자들이 식물들을 분류하는 방식은 식물이 행위 하는 방식에 영향을 미치지는 못한다. 그러나 인간의 경우, 과학자들이 새로운 대상들, 분류들, 범주들을 고안해낼 때는 사람들의 유형과 더불어 행동 및 감각의 유형들도 생성하게 된다. 그 범주들에 맞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동시에 범주들에 속한 사람들이 존재하게 된다. 이들 과정 사이에는 쌍방적이고 역동적인 상호 작용이 있게 된다.
따라서 실천들은 복잡하고 뒤엉키는 방식으로 사회 현실을 구성한다. 그들은 – 동성애와 같은- 지식의 대상들뿐만 아니라 동성애자로 알려진 주체들과 그러한 지식에 따르면서 행위하고 행동하는 사람들 둘 다를 구성하게 도니다. 힘 관계들과 지식의 형태들이 주체들을 창조해낸다고 푸코가 주장했을 때, 그가 의도한 것은 바로 이 당황하게 만드는 효과였다. 그는 자신의 역사 연구를 통해서 각기 다른 종류의 주제들이 구성되는 과정-예컨대 ‘범법자’또는 ‘동성애자’라는 정체성들이 아마도 자연스럽게, 과학적으로 분류된 종별로서 등장하게 되는 과정-을 이해하고 서술하려고 하였다.
주체에 대한 이러한 접근법은 ‘주체의 철학들’에 대한 비판에 상응하였다. 이러한 비판적 입장은 1960년 대 프랑스 지성계의 맥락에서 본다면 현상학과 실존주의에 대한 명시적인 공격을 의미했다. 주체의 일차성은 세계의 모든 지식이 인간의 지식 능력에 합치되어야만 한다는 칸트의 급진적인 생각으로 강력히 표현되고 있다. 우리가 접근할 수 없는 현실의 궁극적 구조를 이해하고, 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연구하기 위한 길은 오직 세계를 인간적으로 경험하는 방식으로 가능할 뿐이다. 이 생각은 현상학자들-독일에서의 후설, 및 하이데거와 프랑스에서 이들의 추종자 사르트르와 메를로퐁티-에 의해 더욱 발전되었다. 현상학의 중심 주장은 모든 철학적 연구의 출발점 또한 모든 과학 이론들에서와 마찬가지로 주체의 일인칭적 산 경험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철학과 과학의 추상적인 이론들과 객관적인 구조들은 그것들을 유일하게 가능하게 해주는 보다 더 근본적인 수준에, 즉 주체의 일인칭적 현실 체험에 그 토대를 두고 있었다. 푸코가 실천들에 연구의 초점을 두면서 도전하고자 했던 대상은 바로 이 ‘주체의 철학’이다. 그는 사람들이 특정한 방식으로 생가하고, 지각하고, 행동하는 데 준거가 되는 근본적이기는 ‘하나 역사적으로 바뀌고 있는 생각의 실천들, 범주들, 개념들, 구조들을 관심거리로 삼았다. 또한 역사적 조건을 준거로 따랐기에 가능하였던 개인적인 경험들을 분석한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경험의 역사적 조건은 밝혀지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푸코의 고고학과 계보학은 이렇게 주체를 다시 생각하는 명시적인 노력으로 기능한다. 주체는 지식의 자율적이며 투명한 근원이 아니다. 오히려 언제나 힘 관계들과 배제들을 섞어 짜 넣는 사회적 실천들의 연계망 속에서 구성된 것이다. 푸코는 자신의 작업에 근대적 주체의 계보학이라는 특성을 부여했다. 그의 작업은 어떻게 사람들이 각기 다른 주체들의 유형으로 – 범법자들, 동성애자들, 정신병자들로서, 또는 그러한 배제들을 통해, 정상적이며 건강한 사람으로서-구성되는가를 연구하는 역사로 특정 지었다. 그러한 역사는 본질적으로 정치투쟁과 연계된다. 자연적 사실의 표현이 아니라 사회적 구성임이 폭로될 때 억압적이며 깎아내리는 정체성과 다퉈서 궁극적으로 변환시키는 일이 가능해진다. 달리 말하면 “이러한 사물들은 만들어져 온 것들이기 때문에, 어떻게 그것들이 만들어졌는지를 우리가 알고 있는 한, 그것들은 애초부터 만들어지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