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K, 비판이론(아도르노) - 객체상호성(1)
주객 상호성을 정당화하는 것은 환원적 연역논증을 의미 없이 되풀이하는 것만큼이나 그 자체로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주체가 이성적 ‘나’, ‘자기’ 또는 이성이고 객체가 육체, 자연 그리고 타자일 때, 정당화 이전에 이미 이것은 이분법을 내포하는 바이다.
그 둘 사이의 상호성이란 지금, 바로, 여기, 이 순간에서 계속적으로 증명되는 것이다. 순수 정신세계가 있다 또는 없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육체와 따로 동 떨어져 있지 않은 살아 있는 인간은 그 정신의 발화나 성장, 수정 또한 필연적으로 객체인 육체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주객의 이분법은 그 자체로 모순이자 본능적으로 반증 가능한 개념이다.
성서에서 말하는 전무후무한 지혜를 지닌 솔로몬 왕 또한 사랑에 빠져서 지혜의 근원인 신을 멀리하였다는 것을 꼭 참고하지 않더라도 육체적 계기는 아주 막강한 것이며 그것과 같이 객체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는 또는 육체를 포함하는 자연으로부터 ‘이성을 성장시키는 개념’이 발생한다는 것은 아주 자명하다.
그러나 동일성 원리의 전제가 되는 주객의 이분법을 반드시 비판해야 하는 지금, 주객 이분법을 토대로 한 동일성 원리는 데카르트 이후부터 걷잡을 수 없이 커져 생활세계를 위협 해오고 있다. 개념의 발생 자체가 주객의 이분법을 가속화 시킨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발생 초기에 이미 그 전제가 노동의 효율성인 만큼 이러한 사태는 이상한 것은 아닐 수 있다.
이제, 주객 상호성을 정당화하기 위해 개념 발생 이전부터의 시기부터 지금까지의 사상사를 간략하게나마 살펴봄으로써 그것이 얼마나 부자연스러운 것인가에 대해 밝혀보려고 한다. 이러한 과정을 살펴보는 것은 그 자체로 주객의 이분법이 얼마나 부자연스러운 것인지를 자연스럽게 반증해주는데 그치지 않고 주객 이분법을 토대로 한 동일성 원리와 또한 이 원리와 자본 그리고 과학기술이 결합함으로써 무시되었던, 무시되고 있는 개별자들 또는 객체의 질적 가치에 대해 반성해 보도록 하는 기회로 작용할 것이다.
언어 발생 이전에는 음성어 또는 지시, 표정, 몸짓, 그림 등 비언어적인 매개물을 통해 대화를 했다. 그러한 매개물들 속에는 언어의 개념과 같이 어떠한 양적 환원의 의도도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매번 대화상대는 발화자의 지시물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다양한 해석을 통해 이해하려고 했을 것이며 발화자는 해석한 의미가 맞는지 아닌지에 대해서 판단하고 표했을 것이다.
생물학적으로나 고고학적으로 알려진 바는 없지만 이러한 다양한 매개물들 사이에서 의사소통이 가장 효율적이라는 것을 실험적으로 알게 되었을 것이다. 인간이 다른 종에 비해 필연적으로 무리생활을 해야만 하고 또한 그 과정에서의 노동은 필수적인 것이므로 이러한 깨달음과 맞물려 개념의 사용은 더욱 공고화되었을 것이다.
개념이 주는 효율성은 난생처음 느껴보는 강력한 달콤함이자 신화세계로 가는 전초로 작용했다. 노동의 분화 그리고 개념의 ‘발생’ 이후에 인간의 먼 조상은 상상력을 언어를 통해 더욱 발전시켰다. 기존에도 자신의 기원과 죽음 이후에 대해 고민해왔지만 언어는 그것을 전달 가능한 것으로 만들었다.
여유로운 지배자 또는 무리의 ‘현인’들의 그러한 신들의 이야기는 종교적 교리가 전혀 첨가되지 않은 것이었지만 별다른 노력 없이(?) 자연스럽게 기원에 대한 탐구의 끝에 절대자를, 죽음 이후에 세계에 천국을 올려놓음으로써 중세시대로 이행하였다. 중세 시대 이후부터 영혼과 육체를 나누어 선악의 가치를 주입한 사제들에 의해 영혼과 영적인 것은 선하게 육체와 육적인 것은 악하게 각인되었다.
육체 또한 그들이 말하는 신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사상을 펼쳤다는 것은 상당한 모순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신께 가까이 나아간 것처럼 보이는 신부나 사제들은 인간 격이 근본적으로 차이나는 것처럼 여겨지도록 할 만큼 자신의 계급을 더욱 공고화하였다.
루터와 칼빈의 종교 개혁으로 인해 그러한 위계는 상당히 와해되었지만 단지 위계만 무너졌을 뿐이고 이성 즉 신학을 통해 신에 대한 믿음을 성장시킴으로써 변질되어버린 주객 관계를 개선시키지 못하였다. 오랜 중세시대의 역사는 프랑스 자유혁명 이후 신 중심 사회에서 벗어난 사람들이 오히려 급격한 변화 속에서 갈피를 못 잡도록 하였다.
당황한 사람들은 변질된 주객의 관계 자체를 개선시키려고 하지 않고 기존의 ‘신’의 자리에 이성을 위치시켰다. 이러한 결과는 주객 이분법을 바탕으로 한 동일성 원리에 익숙해진 사람들의 병든 면모를 반증시켜주는 것이고 오랜 역사만큼이나 공허해진 신의 자리에 위치한 이성을 신보다 더욱 격상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