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ological Demonstration

예정론,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오해

MarvelKim 2019. 3. 31. 09:32

다음은 [예지예정의 오류와 교정]이라는 제목으로 '당당뉴스'에 올라온 기사이다.

예지 예정

어떤 사람들은 사람이 자신의 능력으로 믿으리라는 사실을 미리 아시고 그 사람들을 선택하셨다고 주장한다.
예지 예정이다. 예지 예정은 성경에서 말씀하는 바이다(롬 8:29상, 벧전 1:2상). 

문제는 본문의 예지 예정을 어떻게 이해하느냐이다. 본문에는 사람의 구체적인 행동 곧 믿게 되리라는 것에 대한 어떤 암시도 없다. 앞뒤의 문맥에서도 그런 암시는 없다. 해석은 사람의 생각을 본문에 끼워 넣는 것이 아니라 본문이 말하고 있는 바를 밝히는 것이어야 한다.
해석은 언제나 앞뒤의 문맥과 사용된 단어의 성경적 용례를 통하여 이루어져야 한다. 언급된 본문의 앞뒤 문맥 그 어디에도 믿을 것이나 순종할 것을 미리 인지하셨다고 이해할 만한 내용은 없다. 오히려 베드로 사도는 성령님께서 거룩하게 해주심으로 순종하게 된다고 말씀하고 있다. 

성경의 용례에 따르면 “안다”란 부부가 육체적으로 한 몸으로 연합되는 것이다. 체험적인 앎이다. 부부가 동침함은 사랑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미리 안다”는 것은 “미리 사랑한다”는 뜻이다. 

예지 예정은 하나님의 조건 없는 사랑하심으로 어떤 사람들에 대한 선택이 있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하심으로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어떤 사람들이 선택되었다. 하나님의 선택은 무조건적이다.
사람 편에서 어떤 조건을 갖추어져 있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절대 주권으로 그 기쁘신 뜻을 따라 선택하신 것이다.
무조건적인 선택이다. 그리고 무조건적으로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사람들의 이름을 기록한 책이 생명책이다. 

믿을 것을 미리 아셔서 선택하셨다고 주장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불공평의 문제를 해소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믿어서 구원을 얻느냐 믿지 않아서 구원을 얻지 못하느냐가 선택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어떤 사람들은 선택을 받아서 믿는다. 어떤 사람들은 선택을 받지 못했고 믿지 않는다. 공평하지 못하다. 반면에 모든 사람이 똑같은 조건이었다면 그 부분에서 있어서 공평하다. 그 상황에서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이 생겨난다.

하나님은 믿을 사람을 미리 아셔서 그 사람을 선택하셨다면 불공평하지 않다. 하나님을 공평하신 분으로 제시할 수 있고 사람들의 책임도 동등하게 말할 수 있다. 논리적으로 충분히 이해된다. 그렇지만 성경적이진 않다. 

홍수가 나서 사람들이 물에 힙쓸려 가고 있다고 하자. 그대로 두면 곧 죽는다. 그들은 이미 죽은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다. 물을 거슬러 육지로 올 수 있는 능력보다 물살이 더 강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육지 쪽에서 밧줄이 날아오고 그 밧줄을 붙잡은 이들이 살아난다. 물에 힙쓸린 모든 사람에게 밧줄이 똑같이 날아오지 않고 선별적으로 날아왔다. 그 경우에 밧줄을 던진 사람을 불공평하다고 말할 수 있는가? 그럴 수는 없다.
홍수가 나지 않은 곳에 사는 사람이 그 사실을 알고 밧줄을 던져 몇 사람들을 구한 이에게 불공평하다고 비난하면 정당한가? 정당하지 않다. 그의 행동을 칭찬하는 것이 정당하다. 그가 던진 밧줄을 잡고 살아난 사람이라면 더욱 그렇다.

하나님의 선택이 이와 같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어 모두 죽었던 상태에서 주권적인 선택으로 인해 어떤 사람들이 살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불공평이 아니라 은혜이다. 그것을 불공평하다고 말한다는 사실은 모두가 죽도록 내버려두어야 한다는 말과도 같다. 스스로 살 수 없는 상태에서 밧줄이 던져지지 않았다면 죽는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선택이 없었다면 죽는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자료출처 : http://www.dangdang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8527

예지예정의 오류와 교정 - 당당뉴스

이에 대한 답변

Yohaness Kim (121.183.108.214)

2018-10-31 14:39:12

예지예정이 성격적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능력이 없으셔서 모두에게 밧줄을 던지시지 못할까요?

선택과 유기에 대한 비유를 하고 싶으셨다면 오히려 

밧줄을 모두에게 던졌지만 악한 인간이 잡지 않았다고 해야 맞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대한 예정은 칼바르트가 가장 잘 표현했다고 생각합니다.

"복음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믿는 사람을 구원하시기로 예정하셨다"

인간의 행위와 구원은 완전한 별개가 아닙니다. 

이것은 행위로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이 누군가를 구원하시기로 작정하실 때

인간의 행위와 믿음과는 완전히 별개로 누군가를 선택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구원이 인간의 행위 그리고 믿음과는 완전히 별개라면 그것은 하나님이 인간

에 주신 자유의지에 대한 반론이자 모순입니다.

* 아무런 죄도 짓지 않은 채 죽으면 천국에 간다고 가정해봅시다.

두 아이가 있습니다. 두 아이 모두 어떠한 죄도 짓지 않고 일찍 죽었습니다.

만약 하나님이 인간의 미래와는 별개로 누군가를 구원하시기로 작정(선택)하

셨다면 한 아이는 구원받고 한 아이는 구원받지 못하는 모순이 일어날 수 있

습니다. 하지만 이 두아이의 미래를 미리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둘 다 구원해

주실 것입니다.